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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August, 2009

소나티네 피아노 연주

August 31st, 2009 5 comments

한국에서 부친 디지털 피아노와 짐들이 6주간의 항해를 거쳐 런던 집에 도착했습니다.

기념으로 소나티네를 연주.

Sonatine

아무쪼록 알찬 9월 맞이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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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로 살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August 29th, 2009 13 comments

한창 나우누리 타자방에 빠져 폐인생활을 거듭하던 일천구백구십팔년 가을.

자바 애플릿을 쓰면 채팅을 만들기 쉽다는 일념하에 자바에 올인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지 않고 오직 채팅 클라이언트와 서버를 만들겠다는 일념하에 도서관 자바책을 모조리 뒤적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프로그래밍이야 초등학교때부터 GWBASIC으로 단련되어 있어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socket과 thread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지나치게 실용적인 접근방식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으니 처음에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나올리 만무하여, 결국 만들고 부시고 만들고 부시고를 반복하여 언젠가부터는 편집기만 덜렁 던져줘도 머리속에서 코드를 다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에러도 너무 많이 만났다. broken pipe 라고 나오면 도대체 파이프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stacktrace가 나오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왠지 컴퓨터한테 피드백을 받은 기분이랄까. 그당시 내가 제일 무서웠던건 dead lock이나 race condition이였다. 얘는 뭐 에러도 안나고.. 뭔가 더이상 응답을 못하는데, 왜이러지? 하고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하면 다시 잘 돌아간다. 그렇게 굴러다니다보니 뻔한 루틴잡은 무의식적으로 처리하고 중간 정도의 프로그램은 그저 루틴잡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예측했다시피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려면 엄청난 시간 리소스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발전하려면 더 높은 요구사항이 떨어져야만 한다. 뭐 아는 게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전문가들은 개념이 탑재되어있어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위험하고 그런것들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모른다. 어려운 요구사항은 나한테 맡겨진다. 뭐가 어려운 일이고, 그 일을 했을 때 잠재적으로 생길 수 있는 위험이나 책임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내겐 어려울 이유가 없다. 아는 게 없으니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다.

적어도 2003년까지는 이런 생활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지겹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 사전정보가 없으니 내가 하는 일은 내 사고틀 안에서 모조리 ‘최초의 일’ 이였기 때문에 재미 없을리 만무.

그런데 프로덕트 외적인 것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그게 2004년부터였던 거 같다. 프리랜서 활동이 한창 물 올랐던 시절. 프리랜서는 나홀로 개발하기 때문에 관계자와 의사소통할 때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되기 어렵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 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케터 형한테 마케팅 책도 추천받아 읽어보고 프로그래밍과 상관없는 것들을 뒤적이며 그당시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많은 현상들을 재해석하며 감히 평가해보기도하고 그렇게 또 한동안 재미있게 보냈다.

그러다 어느순간부터는 코딩을 하지 않게 됐다. ‘다 그냥 하다보면 되는 일인데..’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된다- 는 말에 대해서는 ‘그까이꺼 세상만사 제쳐놓고 길어야 3일밤만 안자면 되는데…’ 로 일축.

그래도 세상에는 항상 재미있는 일이 넘쳐나는 법이라 가끔씩 꼭 만들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그럴때면 집요하게 머리를 굴리고 손가락 노가다를 심하게 해서라도 원하던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꼭 만들고 싶은 것이 자주 생기지 않게 되었다. 내게 제품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 간간히 프리랜서 일이 들어와서 해소되긴 했으나, 난 그저 제품을 만들고 싶은데.. 경력이 높은 사람한테 *코딩 따위* 잘 안시키려 하더라. 나 HTML이랑 CSS 코딩도 진짜 좋아한다. element를 열고 닫을 때 사용하는 기호를 입력하기 위해 Shift 키를 눌러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사고의 흐름이 자주 끊겨 타이핑 측면에서는 좋아하지 않으나 어려운 게 많으니까 좋은거다. 밤을 새야 되는 것이기 때문. 못하니까 재밌는거다.

핑계는 이쯤에서 줄이고,  여튼 요새 프로그래밍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감 떨어지는 거 그거 솔직히 3년 쉬어도 3일만 밤새면 90% 이상 채워진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우물우물 처리했던거라면 1주일만 쉬어도 다 까먹을테지만, 밤을 지새우며 부정, 분노, 우울, 수용 -_- 등을 겪으며 학습한 기술들은 비슷한 감정 상태가 되면 사라졌던 뉴런 인덱스들이 어느새 삭삭 맞춰진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신혼이라…)

그러다 며칠전 만들고 싶은게 생겨서.. 화면 구성, 플로우, 디자인 컨셉, 핵심 가치, security consideration 등등을 열심히 노트에 적었다. 컨텐트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거고 편리하게 생산하기 위한 입력툴 설계도 하고 디비 스키마도 만들고.. 성능을 고려해 인덱스도 지정해놓고.. 그렇게 나름 스스로 만족하는 product note를 하루만에 완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Implementation Part 라고 Heading을 잡고 펜을 들었는데…

30분이 지나도록 단 한줄도 쓰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원래 하던대로 vim 엔터치고 시작해야 하는건가?

프로그래머로 살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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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없고 제목 없고 내용만 있음

August 27th, 2009 8 comments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지금 눈 앞에 있는 일이 아니라, 제껴놓은 일들이다.

과거

나는 심지가 그다지 굳지 않아서 이곳 저곳 뿌리내리며 사는 사람이지만, 과거를 살지는 않는 것 같다. 살면서 후회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끔 후회도 하고.. 뭐 그렇게들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 언제부터 과거를 신경쓰지 않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20살때였던가, 10차선 대로를 파란불이 깜빡깜빡 할 때부터 건너기 시작했는데 너무 고속으로 뛰다보니 주머니에서 삐삐(beeper)가 떨어졌다. 물론 떨어진 당시에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고 길을 건너고 난 뒤 삐삐를 찾다보니 없어서.. 다시 거꾸로 건너며 어디에 떨어졌는지 확인했다. 불행하게도 자동차님이 내 삐삐를 밟고 지나가셔서 납작하게 뭉개져있었다. 이 순간, 왜인지 모르겠지만 0.1초만에 체념하고 새로운 삐삐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기뻤다.

후회를 하는 동안에는 괴로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원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면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 뭐랄까 비생산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 후회하는 행동의 장점을 최대한 뽑아보려고 노력해본다면, 후회하면서 신나게 괴로워하여 머리속에 잘못된 선택을 각인시켜서 미래에 되풀이될 잘못된 선택을 방지하는 것 정도이다.
이러한 방법은 절대로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잘못된 유아 교육이 이런 후회에서 오는 쇼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겁먹고 활동성만 떨어지지.

과거를 살지 않는다. 트라우마에 기인된 행동도 과거를 사는 것이라 보일 수 있겠지만, 트라우마는 과거의 쇼크로 인해 잘못된 정보가 확실하게 각인되어 현재 시점까지 실제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트라우마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는 것은 과거를 살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인다.

과거를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자기 자신이 과거의 자신보다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금의 자기 자신이 초라해서 자꾸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이라고 믿고 싶은 것만 같다. 뭐 당연히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발전도 없고.

현재

현재를 사는 것. 나는 이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 서술하기 어려운 녀석이라고 느낀다.  우리에게는 이드(id)와 자아(ego)가 있다. 이드는 과거가 과거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 과거가 간섭한 부분이 있다고 해봐야 누적된 자기 자신일 뿐이다. 하지만 자아는 상대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하다. 시쳇말로 이미지 관리가 필요한 녀석이다. 이미지 관리라는 것은 명확히 과거의 자신을 현재의 자신인 것처럼 연기하는 기술이다. 혹은 스스로 과거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 것처럼 몰입을 할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자아는 과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몰입(flow) 상태는 자아가 일시적으로 소멸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편이다. 옆에서 보면 참 지 기분대로 사는 것 처럼 보이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도 않고.. 그렇게 저렇게 하는데 참 행복해보인다. 이러한 존재를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은 아무거나 대충 트집잡아서 깎아 내리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그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미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영리한 활동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를 무시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말이다. 다른 사람의 미래를 준비하며 사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삶의 조각을 위해 사는 불쌍한 사람이다. 스스로의 하루하루를 묶어보면 어떤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도구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찌 문맥이 있을 수 있겠는가. 루즈 커플링된 인간.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컴포넌트들은 루즈 커플링일수록 좋다고 알려져있다. 자기 자신을 훌륭한 도구(루즈 커플링된)로 만드는 사람은, 그 대상이 꼭 다른 사람이 아닐지라도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날려버리는 사람이다.

그렇게 훌륭하게 자라온 도구님은 자신이 준비해왔던 미래에 도착하게 된다. 이제 그는 자신이 준비해왔던 그 미래에 왔다. 이제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열심히 완성한 컴포넌트들을 조립해서 조금 더 큰 컴포넌트를 만들 것인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리게 된다.

그래서 다들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하나 보다. 문맥이 없는 삶은 지겹거든.

가끔 이렇게 정리하지 않고 핵심도 없고 딱히 근거도 없는 말들을 주저리 주저리 내뱉으면 머리가 정화되는 기분이 들어 뿌듯하다. 말하기와 비슷한 면도 있는 듯 하다. 미리 많이 생각하지 않고, 작성한 글을 검토하지 않고, 뭐든 주르륵 써내려간 다음, 확 엎질러 버리기. 머리속에서 둥둥 떠나니며 flush 되지 못해 슬퍼하던 생각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데는 말하기가 제맛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이렇게 글로라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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