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2009

사람들은 픽션을 좋아한다.

Saturday, October 17th, 2009

마케터는 거짓말을 하지만, 마켓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픽션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20대후반이 되기 전까지 소설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지내다보면 그들이 좋은 소설을 추천해줄 때가 있다. 생산성에 직결되는 것에만 목숨을 걸었던 20대 초중반의 나에게 소설 읽기는 경멸에 가까운 것이였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천해주면 소설을 싫어하는 내 자아보다 그와의 관계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소설을 싫어하는 자아를 잠시 묻어두고 픽션을 읽어보게 된다.

읽어보게 된다. 읽게 된다가 아니라, 읽어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소설의 좋은 점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꾸며낸 이야기다. 거짓된 것이 아니였다. 정보성 글귀에서 사람들이 함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적혀있다. 물론 사실은 아니지만, 적혀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저자와 독자 사이에 깔려있기 때문에 마음껏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였다. 이 세상엔 논증에 실패한 훌륭한 지혜와 진리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이 소설이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에 나오기도 하는 것이였다.

그것을 깨닫고 난 뒤, 정보와 개념만을 원하는 내게, 소설은 쓸모있는 하나의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설들을 분석적으로 읽고 있다. 저자가 표현한 등장 인물들의 감성의 흐름을  타고 그 감정들을 유유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심하게 굴려서 감성의 흐름을 추적하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어떠한 개념 덩어리와 정보 덩어리를 추출해내고, 그것을 내 실생활에 녹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녹여낸다.

그런데 내 주위 멀쩡한 친구들을 보면, 나와 같은 짓을 하지는 않더라.

결국 아직도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마켓에서는 소설이 항상 최고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 널리 읽히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무협지가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무지를 일깨워줄 사람은 어디있는가.

프로그래머가 창의적이기 힘든 이유

Saturday, October 17th, 2009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 문장론에서 독서란 스스로 해야할 생각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행위라 하였다. 독서는 글을 읽는 것이지만 소스코드를 읽는 것으로 확장하여 사상해보겠다.

프로그래머는 읽어야 할 책이 대단히 많다. 남의 만들어놓은 플랫폼 위에서 노는 것이 프로그래머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해당 플랫폼 (Win32/Win64가 될 수도 있고 FreeBSD가 될 수도 있고, Java가 될 수도 있고 .NET이 될 수도 있고, Eclipse가 될 수도 있겠다)을 익히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소스코드를 보고 추측하는 방법도 있고, 그들이 작성해둔 문서를 읽는 방법도 있다. 그게 소스코드이건 문서건, 그들의 저작물을 읽어야 한다.

저작물의 완성도에 따라, 학습하고자 하는 사람의 독해 능력과 배경지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부분 저자의 머리속 내용 그대로를 가져오기 어렵다. 빈 구멍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빈 구멍들이 나올 때마다 생각을 한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쌓아둔 경험들을 총동원하여, 혹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생각을 한다. 그래서 좋은 저작물이 많지 않던 시절의 프로그래머는 생각을 잘한다. (엄한 생각을 할지라도)

그런데 어느덧 프로그래머가 넘치는 시대가 왔고,  자연스레 프로그래머를 대상으로하는 마켓도 커졌다. 이제 좋은 저작물이 많다. 모든 정보를 다 담고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마켓이 정의한 범위의 정보는 글만 읽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퀄리티가 높아졌다. 동시에 읽기 좋은 블로그 포스트도 넘쳐난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은 점점 더 생각할 기회를 잃는다.

생각하는 것도 힘에 버거워진 마당에, 창의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정신줄을 잡기 위해 작성하는 글

Friday, October 16th, 2009

글을 쓸 때는 미리 준비된 의도가 있어야 한다.

블로그에 글을 안쓴지 너무 오래됐다는 의도로 그럴싸해 보이는 글을 쓰는 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행동이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의도 또한 독자를 기만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놓쳐버린 정신줄을 잡기 위해 쓰는 글을 버젓히 발행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글을 Draft 로 남겨두지 않고 발행하는 이유는, 글쓰기가 정신줄을 잡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공유하여 독자들을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감에 젖어 있을 때는 메시지를 표현할 이유가 없다. 글로 풀어내야할 사상이 머리속에 들어있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한데 무엇하러 글을 쓰나. 우울함에 묻혀 있을 때 또한 메시지를 표현하지 않는다. 메시지를 표현할 정도의 에너지가 있다면 그는 아직 덜 우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행복하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다. 나는 그저 바쁘다. 무엇을 해야해서 바쁜 게 아니라 바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혔기 때문에 바쁘다. 사람들이 하는 일 없이 바쁘다고 말하는 것이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이런 경우, 내 행동의 목적은 하는 일을 많이 만드는 것일 뿐인거다. 각 일들이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닌거다. 못된 거다. 성취중독과는 다르다. 성취중독은 건강한 자기 가치감의 결여를 성취를 통해 회복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나의 경우는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를 직시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저 *다른 것*으로 분주하게 옮겨다니며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갖가지 정신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질병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 스스로의 상태를 자각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작업은 정신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를 자각하며 글을 쓰고나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생겨서 정신줄이 잡히게 된다.

바야흐로 미션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