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자 외워

우리가 세포들로 이루어진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종종 잊곤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태도의 문제로 귀결시키던 습관을 잠시 버리고 과학적인 접근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물론 아무리 좋은 기술을 써도 튼튼한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쓸모 없겠지만 말이다.

갑자기 이런 류의 책으로 관심이 되돌아간 이유는, 최근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나름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예상과 내 결과물이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게을러서 계속 스스로의 태도를 탓하며 (열받거나 짜증나서 스스로를 케어할 수 없게되면 남탓하기도 하지만 ㅋ)  어떻게 더 좋은 태도와 개념을 탑재해야될지 고민했었는데, 나름 한다고 했는데도 자꾸 오류가 보이니 더이상 태도만 탓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이다. 이제 마스터 요다와 괴테와 니체의 가르침을 잠시 뒤로하고 과학서로 피신한다.

최근 내가 맞이한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해야할 일의 개수가 많다. 그런데 각 할 일들의 난이도는 높지 않다. 물론 여태까지 써보지 않은 플랫폼도 있었지만, 개념이 같고 API 사용법만 다른 경우라면 잘 설명된 문서를 통해 어렵지 않게 해당 지식을 획득할 수 있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아(ego)가 등장해서 친숙하지 않은 환경이니 어려울꺼야~ 속도를 줄여~ 하고 속삭이지 않는 바에야 이런 부분에서 시간을 축내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새로운 일은 쉽던 어렵던 설계작업이 동반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문맥을 탑재해야 한다. 나는 동시에 한가지 일밖에 못해서 문맥변환을 처리하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1. 기존 작업물에서 생긴 버그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책임감 unload
  2. 기존 작업물에서 해야할 일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 unload
  3. 새 작업물의 업무 범위 정의
  4. 새 작업물의 핵심 문맥 암기
  5. 새 작업물 처리과정 시작

기존에 다른 일로 쉽사리 이동하지 못했던 이유들은 1, 2번 문제였다. 이를 발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자아를 버림으로써 이를 해결했다. 3번의 존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3번에서 정의한 새로운 문맥을 탑재(load)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무의식으로 접근해서 쓸 수 있을만큼 외워야하기 때문이다.  이 암기작업은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그런데 나는 4번 작업을 무시하고 바로 5번으로 건너뛰어 들어갔다. 아직 문맥탑재가 끝나지 않았는데, 요것 요것을 하면 된다고 정의했다고 해서 해당 문맥의 아이템들이 머리속에서 유기적으로 엮여 마구마구 작업이 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당연히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거북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게 된다.

그 결과, 조금 우습지만, 새 작업물에 대한 문맥을 뽑아서 따로 외우는 시간을 도입하기로 했다. 종이에 쓰고 하늘보고 중얼중얼.. -_- 하다가 아니 이게 웬 19세기 학습방법인가.. 하는 마음에 암기에 관한 책들을 다시 들춰보고 있다.

브레인 룰스
브레인 룰스

챕터 5의 단기기억 부분이 필요하다. 업무 정의는 이미 끝난 상태라 무엇이 필요한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을 load 하는데 비용이 들어 (탐색기를 뒤지거나 cd; ls 콤보를 날린다거나 소스코드를 뒤적인다거나 오피스 문서를 뒤적인다거나) 이미 로드된 것들조차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목표는 정보 인출속도를 최대로 올려서 이미 load된 다른 문맥들이 단기기억소에서 밀려나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브레인 룰스와 공부의 비결에서 얻은 결론은, 일정 시간간격을 두고 반복 노출하는 것이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였다. 다행히 이렇게 외운 것들도 다시 건드려주지 않는 이상 30일이내에 20%미만만 남기고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에빙하우스가 밝혀줬으니 머리가 터져 미치는 일은 없을 듯 하다.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자연스럽게 외울 수 있겠지만, 내게 그런 운은 없으니…

고등학생이 된 기분으로 외우자 외워.

p.s. 물론 아침에 일어나서 수분공급도 잊지말고 해줘야하고, 종합비타민도 먹어야되고, 주기적으로 근육운동도 해줘야하고, 무리한 알콜 섭취도 삼가야하고.. (중얼중얼 담배 끊는다는 얘기는 죽어도 안함)

8 Responses to “외우자 외워”

  1. @hey
    충분히 소화하고 잊어버릴때쯤 한번씩 다시 공부하는 게 중요해요. 시중에 도는 깜빡이는 충분히 소화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려서 문제되는 것이 아닐까요?

  2. hey says:

    흠. 그럼 요즘 단어 암기용으로 인기인 깜빡이가 의미가 있을까나요? 의미 없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3. neonatas says:

    @Jang-Ho Hwang
    김과장을 움직이겠다는거야? +_+!

  4. @neonatas
    창업할까? 음하하 -_;

  5. neonatas says:

    종이와 하늘보기로 진행하는 “암기”라..
    예전에 얘기하던 “인간적인(?) 할일 관리” 프로그램을 그 “암기” 용도로 확장시켜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댓글 하나 더 남김. 🙂

  6. neonatas says:

    @Jang-Ho Hwang
    헉.. 내가 저걸 왜 괴테로 적었지? ㄷㄷ..

  7. @neonatas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은 니체횽아꺼 -ㅅ-

  8. neonatas says:

    공정과 비결들이..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_-; 괴테 횽아를 뒤로 하기는 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