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th World Notes by Jang-Ho Hwang

2Oct/10Off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내가 아니다

Posted by Jang-Ho Hwang

매크로가 충분히 많아져서 어느 순간 만족을 경험하게 되면, 더이상 매크로를 개발하려는 의지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새로운 문제를 맞이했을 때, 기존에 가진 매크로 풀에서 각 매크로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합한지 아닌지 대조하는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릴지라도 의식적인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사고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렵기 때문이다.

읽기나 쓰기에는 draft 상태가 있어도 된다. 쇼펜하우어처럼 까칠한 사람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글쓰기를 돕는 많은 책들이 draft를 상태를 만드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글을 쓰기전에, 혹은 쓰는 도중에 잘 모르는 것들을 책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고, 핵심 키워드들만 먼저 적어놓고 문장을 만드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된다. 심지어 단락의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썼던 문장들을 제거하기도 하고, 중간에 새로운 단락을 추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말하기나 듣기에서는 draft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 말하기나 듣기를 시작하기전에 충분히 매크로를 많이 만들어두는 전략을 사용한다면, 한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식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매크로에만 의존할 경우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는 순간 바로 흐름이 끊어진다. 예외처리 매크로를 준비하여 일시적으로 고통을 피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만약 대화를 진행중인 모든 구성원이 매크로 플레이어일 경우, 그 누구도 흐름을 관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그냥 벽보고 말하는거다. A가 우리집에 금송아지 10마리 있다고 말했을 경우, 집, 귀중품, 동물 정도의 키워드는 의식적 사고없이도 뽑아낼 수 있으니 이 키워드들이 적절히 조합된 매크로를 찾아서 꺼내면 그만이다.

자신의 소유물들이 충분히 많아져서 풍부해진 소유물들에 의존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가난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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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Oct/09Off

프로그래머가 창의적이기 힘든 이유

Posted by Jang-Ho Hwang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 문장론에서 독서란 스스로 해야할 생각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행위라 하였다. 독서는 글을 읽는 것이지만 소스코드를 읽는 것으로 확장하여 사상해보겠다.

프로그래머는 읽어야 할 책이 대단히 많다. 남의 만들어놓은 플랫폼 위에서 노는 것이 프로그래머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해당 플랫폼 (Win32/Win64가 될 수도 있고 FreeBSD가 될 수도 있고, Java가 될 수도 있고 .NET이 될 수도 있고, Eclipse가 될 수도 있겠다)을 익히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소스코드를 보고 추측하는 방법도 있고, 그들이 작성해둔 문서를 읽는 방법도 있다. 그게 소스코드이건 문서건, 그들의 저작물을 읽어야 한다.

저작물의 완성도에 따라, 학습하고자 하는 사람의 독해 능력과 배경지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부분 저자의 머리속 내용 그대로를 가져오기 어렵다. 빈 구멍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빈 구멍들이 나올 때마다 생각을 한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쌓아둔 경험들을 총동원하여, 혹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생각을 한다. 그래서 좋은 저작물이 많지 않던 시절의 프로그래머는 생각을 잘한다. (엄한 생각을 할지라도)

그런데 어느덧 프로그래머가 넘치는 시대가 왔고,  자연스레 프로그래머를 대상으로하는 마켓도 커졌다. 이제 좋은 저작물이 많다. 모든 정보를 다 담고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마켓이 정의한 범위의 정보는 글만 읽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퀄리티가 높아졌다. 동시에 읽기 좋은 블로그 포스트도 넘쳐난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은 점점 더 생각할 기회를 잃는다.

생각하는 것도 힘에 버거워진 마당에, 창의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