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돈을 주제로 글을 자주 쓰게 된다. 오늘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돈을 번다는 것에서 얘기했던 내용을 살짝 분산시켜볼까 한다. 해당 포스트를 작성했을 당시의 나는, 하는 일에 비해 큰 보수를 받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였다. 그 프로젝트는 위기상태였고, 나는 위험을 극복해줄 해결사로 투입됐다. 당시 출국을 앞두고 한국에서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이였기 때문에, 고객을 100% 만족시키려는 열정이 없어서 만족스러운 결과는 안나왔지만, 그래도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고, 프로젝트 소개시켜준 형님에게 특상등심 한우도 사드리는 여유를 부리며 유유히 출국할 수 있었다.
포스트를 작성하던 시절의 나는 돈이 절실하지 않았다. 나는 돈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내가 원하던 것들 중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외모를 치장하는데도 관심이 없고, 술은 소주를 좋아한다. 게다가 유치원생 입맛을 가지고 있어서 불량식품들을 좋아한다. 언젠가 일인분에 2만원이나 하는 스파게티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친구들 중 색을 밝히는 부류가 있어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에 간적도 있었다. 대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돈은 내가 냈는데 왜 지들이 노래를 부르나. 잘 부르기라도 하면 말을 안해요.
지금도 나는 철이 한참 덜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20대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철이 없었다. 돈을 모아서 뭐하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다. 돈을 모아야 하는 이유, 혹은 벌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색을 밝히는 친구에게 물어보면, 그는 외모에 투자하는 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친절히 설명해준다. 그렇게 외모에 투자해서 얻는 가치라는게, 외모에 반해 넘어오는 값싼 인간들이였기 때문에 내게는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 물어보면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새파랗게 젊은 애(그 당시의 나)들은 자기도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 세대처럼 기력이 쇠하고 늙어간다는 사실이 결코 와닿지 않는다. 결국 노후대비도 적절히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한달에 100만원이면 내가 사고 싶은 것들 다 사고도 남았었다. 결혼을 해서 소비가 2배가 됐지만 그래봐야 한달에 200만원이면 아내와 내가 사고 싶은 것들 다 산다. 지금은 런던에 살고 있지만 한달 200만원(1,000 파운드정도)으로 인터넷, 전기세, 식재료, 교통비, 통신비, 담배값, 가끔 여행가는 것까지 커버된다.
그런데 런던에 오고 나서는, 그 이상의 지출이 필요하게 됐다. 일단 매달 월세가 나간다. 매년 지불해야할 아내의 학비도 적지 않다. 결국 몇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돈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그래서 평소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프로젝트들을 시작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한테 덤비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궁지에 몰리면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도 낼름낼름 받는 다는 것.
돈이 많다고 딱히 좋을 건 없지만, 돈이 부족하면 돈을 가진자에게 통제당하기 쉽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열심히 일하든말든 계속 돈 가진자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악의 구렁텅이를 벗어날 수 있을리 만무하다.
나는 그런 구렁텅이 속에서 인생을 허비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가지다.
첫번째는, 내가 가진 돈과 현재의 수입에 만족하는 것이다. 통제당하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부족하다’ 라는 생각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돈이 부족한데, 돈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보기 힘드므로 적절한 전략은 아닌 듯 싶다. 혹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의 일부분을 포기해야만 한다.
두번째는, 타인에게 통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돈이 남도록 하는 것이다. 통제력을 분산시키려면 고객의 수를 늘려야 한다. 한 사람의 고객이 말도 안되는 요청을 했을 때 이를 무시한다할지라도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전략도 고객들이 커뮤니티를 구성하여 공격(?)하기 시작하면 무시할 수 없지않겠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지경이 됐다면 해당 요청이 올바르다라고 판단하는게 적절하다. 요새 고객들은 예전과 달리 social validation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며, 언론플레이는 그 힘을 많이 잃었다.
5월까지만 해도 첫번째 전략을 선택할까말까 하고 있었는데,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광고수익 덕분에 두번째 전략을 타게 됐다.
그리고 일개 개인개발자로서는 이미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와 동시에 내 기존 사고방식의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어린 시절 내게 연봉이란 생활을 위한 돈이 아니라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한 적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노동(input)이 돈(output)으로 환산되는 함수의 내부 알고리듬은 전혀 모른다. 확실한건 그 함수의 인자에 많은 노동력을 넣었다고 많은 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똑똑함을 넣어도 많은 돈이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도 감이 안잡힌다. 앱에 붙인 광고로 돈을 벌기 시작한 뒤로는 더욱 더 모르겠다.
예를들어 내가 광고로 한달에 한화로 1,000만원(실제 수입과는 관계가 없다)을 번다고 치자. 내 앱의 사용자층은 북미, 유럽, 아시아에 적절히 퍼져있기 때문에 피크타임이 없다. 그러면 시간당 13,888원을 버는 것이다.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여행을 즐기고 있을 때도, 책을 보고 있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시간당 13,888원이 벌린다. 함수의 입력에 시간만 넣으면 결과가 나온다. 내가 1,000만원이 필요하면 한달이란 시간을 흘러가도록 허용하기만 하면 된다. 난 아직도 함수의 존재를 믿고 싶은가보다. 노동력이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됐는데, 이제는 뭐라도 넣고 싶어서 ‘시간’을 넣고 있지않은가.
돈과 개발능력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난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는지 여전히 모른다. 이것은 치명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알 수 없다면, 차기작을 만들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현재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앱을 업데이트할 때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행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케팅과 광고시장에 대한 서적을 읽어 나가고 있다. 그 분야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에 익숙치 않아 더디긴 하지만, 조금씩 알아가는 기분이 즐겁다.
연봉이 1,000만원인 개발자라고 무시할 이유가 없고, 연봉이 1억인 개발자라고 존경할 이유가 없다. 돈은 돈 버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버는 것 같다. 적게 받는다고해서 열등감에 사로잡힐 이유도 없고, 많이 받는다고해서 잘난 사람도 아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사용하는 인적자원 평가시스템은 전혀 믿을만하지 않다.
어쩌다보니 글이 길어졌으니 억지로라도 결론을 내야겠다. 똑똑한 개발자들이 다들 회사 때려치우고 자기 사업을 시작해서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진정으로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