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가 충분히 많아져서 어느 순간 만족을 경험하게 되면, 더이상 매크로를 개발하려는 의지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새로운 문제를 맞이했을 때, 기존에 가진 매크로 풀에서 각 매크로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합한지 아닌지 대조하는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릴지라도 의식적인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사고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렵기 때문이다.
읽기나 쓰기에는 draft 상태가 있어도 된다. 쇼펜하우어처럼 까칠한 사람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글쓰기를 돕는 많은 책들이 draft를 상태를 만드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글을 쓰기전에, 혹은 쓰는 도중에 잘 모르는 것들을 책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고, 핵심 키워드들만 먼저 적어놓고 문장을 만드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된다. 심지어 단락의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썼던 문장들을 제거하기도 하고, 중간에 새로운 단락을 추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말하기나 듣기에서는 draft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 말하기나 듣기를 시작하기전에 충분히 매크로를 많이 만들어두는 전략을 사용한다면, 한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식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매크로에만 의존할 경우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는 순간 바로 흐름이 끊어진다. 예외처리 매크로를 준비하여 일시적으로 고통을 피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만약 대화를 진행중인 모든 구성원이 매크로 플레이어일 경우, 그 누구도 흐름을 관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그냥 벽보고 말하는거다. A가 우리집에 금송아지 10마리 있다고 말했을 경우, 집, 귀중품, 동물 정도의 키워드는 의식적 사고없이도 뽑아낼 수 있으니 이 키워드들이 적절히 조합된 매크로를 찾아서 꺼내면 그만이다.
자신의 소유물들이 충분히 많아져서 풍부해진 소유물들에 의존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가난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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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rve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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