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책을 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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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책을 읽는가?

딱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책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스스로 즐거워하며 남이 사용하는 것을 지켜보며 운영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IT 기술 자체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것만 같다. 청강문화산업대학(98학번 입학이다. 학력위조 따윈 없다 ㅋㅋㅋ)을 다니며 도서관에 있는 Java 책은 다 보며 기술에 열광한 시절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기술을 이용한 것 뿐이다.

주위 환경이나 내 자신에 대해 만족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꾸겨대고 사는 것에 익숙한 나는, 사실 이 세상에 나돌고 있는 제품이란 것들에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끔 주위에서 너무 앞서나가거나 이상적인 게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하고, 자기네 제품이 현존하는 것 중에는 최고라는 변명을 듣기도 하지만...

원래 도구란 것이 인간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해줘야 도구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거 아닌가. 문제가 심각하게 많은 도구가 재수없게도 세상에 퍼진 후, 그 문제를 없애기 위한 도구가 나오질 않나.. 사람을 이롭게 하는 도구를 만들어야지 니 혼자 돈을 벌기 위한 도구를 만들지 마라.. 쓰는 고객 짜증나 뒈진다.

아, 잠시 울컥했다. 하려던 얘기는 IT 책을 더이상 열광하여 읽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진짜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만들고 싶은 것은 다 만들 수 있다. 당신은 아니라고? 그렇다면 만들고 싶은 생각이 사실 없는거다. 부수적인 노이즈가 낀 거야. 사실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지 않았을꺼야. 멋져보여서 시작했거나, 월급 많이 준다고 친구나 선배들이 구라쳐서 시작했거나, IT 쪽으로 공부를 열심히해서 유명해지고 싶었거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상태로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놨다가 발을 뺄 용기가 없어서 밥벌이나 하자.. 하고 계속 있는거야. 아니면.. 다른 재밌는 게 생겼을꺼야 나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해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 글 뒷부분에서 설명할 것이지만 사회생활에서의 내 회피성 성격장애로 인해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JMSN 개발하면서 잠시 유명세를 타긴 했으나 어린 시절의 불장난이였을뿐, 내 자아가 원하는 것은 아니였다. 내가 만들고 싶은 만큼만 내 지식은 늘어난다. 원치 않는 정보는 취하지 않는다.

좀 더 나의 wish가 늘어난다면 그것을 따라가기 위해 난 다시 초인 Rath 모드로 돌아가서 불꽃코딩을 할꺼다. 하지만 만들 wishlist 를 확장하기 전에 뭔가 다른 것들이 자꾸 내 인생을 막았다.

어려서부터 특이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다행히 특이하다며 친구들이 피하는 게 아니라 모여드는 편이였다. 뭐 워낙에 웃는거 좋아하고 웃는 사람을 좋아해서 내가 특이하다는 것은 내게 즐거움이였다. 그래서 특이함을 강화했다. 환호하는 관객에 응수해 더욱 신나게 몸을 흔드는 광대처럼.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다. 유전적인 영향 및 의식이 생기기 이전 가정교육에 따라 형성된다고 하는 것처럼 장단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단점을 커버하려고 계속 노력하기보다는 장점에 매진하는 편이 ROI가 훨씬 좋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 단점들이 날 방해한다면?
당연히 원하는 것을 바꾸거나 단점을 없애야 한다.
만약 단점을 없애고자 할 경우, 성격적인 것이라면 성격을 고쳐야하고 외모라면 얼굴을 뜯어고치고 운동을 피튀기게 하면 되고, 원하는 것을 바꾸고자 한다면.. 뇌에 심각한 화학작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 단점이라는 것이 '원하는 것을 하면 안된다' 라고 주입된 성격이라면 어떨까.
골치아프다.

그래서 고3때부터 자기관리나 처세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정말 '아~' 하기도 하고 새로운 앎을 많이 얻었다. 잊고 싶지 않은 것은 줄을 쳐가며 읽기도 하고 여러번 읽어서 그것이 책에서 읽은 것인지 정말 나의 생각인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뿌듯했다. 그땐 그런 이유로 책을 읽었다.

자기관리 책을 많이 읽은 탓에 일중독은 얻고, 처세책을 많이 읽은 탓에 복합 스킬은 많이 얻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뭔가 '근원' 적인 것은 고쳐지지 않는 기분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였다. 머리속에 지식으로는 꾸준히 남아있지만 몸으로 녹아내리지 않았다.

근원에 다가가야 한다. 심리학과 철학서로 옮겨봤다. 지루하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이였다. 현실과 연결이 되기도 하며 앎과 깨달음(과연 깨달음이였을까?)의 즐거움이 넘쳐났지만, 결과적으로 자기관리/처세책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더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야할까?

2003년이였던가. 실용연애전서라는 책을 보기도 했는데 책의 내용이 당시 나에게 충격적이여서 아직도 많은 것들이 기억난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것을 작업하거나 연애하는데 썼던 적은 없었다.
그런 책들을 많이 읽은 덕에 좋은 글을 쓸 수는 있지만, 내재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이 실시간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오프라인 대화는 어렵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아니다. 아니 이미 분열되었다.

잡다하게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좋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변화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학교때 국어를 심하게 못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남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들어도 내 맘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점점 더 책에 빠져들게 된다. 마치 마약 같이.
책을 볼때는 안도감도 들고 머리도 잘돌고 기분도 좋아진다.

그런데 책을 덮고 바깥 세상으로 나오면..
분별없이 닥치는대로 자해하듯 책을 읽은 탓에, 수많은 자아들이 머리속에서 지들끼리 싸운다.
과음을 해도 소용이 없다. 필름이 끊겨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더라.
진정한 내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의 나는 나라고 지금의 나는 믿고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이 글을 볼 때도 그렇게 느낄 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할 수 없다.

다시 책을 들면 평화로워진다. 그래서 난 계속 책을 읽는 것 뿐이다. 아, 한가지 더. 코딩할때도 평화로워진다. 다행이다. 이게 직업이여서. swizard 님이 추천해준 서적몰입 Flow 에서 말하는 Flow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 중반부에 쓴 '회피성 성격장애' 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회피성 성격장애

회피성 성격장애는 거절과 배척에 대한 극도의 예민성이 특징이며 이 때문에 환자는 사회적으로 위축됩니다. 그들은 내심 친밀함을 강하게 원하고 있으나 부끄러워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은둔적인 생활을 하지만 실제로는 남들과 안정된 친분관계를 갖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으로부터의 거절에 대하여 지나치게 민감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조건없이 확고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대인관계만을 갖고자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존심이 낮으며 거절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 때문에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은둔적인 생활을 해 버립니다. 직업적인 영역에서는 수동적인 분야에서 일합니다. 공포성 회피가 흔합니다.

한의원에 가도, 내과에 가도
고3 수험생처럼 예민한거 말고는 괜찮다는 말에
이번에는 정신과에 방문해보려 한다.

거절과 배척에 대한 극도의 예민성이 특징이라면, 초딩때부터 달라진 게 없는거니 쉽게 고쳐지리라 기대하진 않는다만. 만약 고쳐진다면 그동안 갈고 닦았지만 사용하지 못했던 수많은 지식들을 사용할 수 있는 신나는 세상이 내게 펼쳐지리다.

Comments

7 thoughts shared

01

신도

화고한 -> 확고한 (어디게 -_-)

02
R

rath

미어 미어 ㅠ.ㅠ 고쳐찌롱

03
R

rath

그나저나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고맙. 주소 불러주면 (L)을 가득담아 폭탄 하나 보내드리겠음 ㅡㅡ

04

가이브

장호님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 10살때의 '명심보감'은 저를 이 꼴아지로 만들었지요 ^^;

05

신도

장문일수록 오기가 (폭탄 반사)

06
R

rath

신도, 앗 참고하겠습니다 :$

07
R

rath

가이브님, 피해자가 많군요. 오랜만입니다 ㅎㅎ 명심보감이라.. 꼴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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