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부터 프리랜서로 일하다 9월 1일부터 CTO하던 그 가로수길 회사를 그만뒀다. 퇴사를 하도 자주 하는 편이라 빡치는 것도 대부분 2-3일 안에 끝나고 금세 평정심을 찾게 된다. 이로써 내 회사 빼고 올해만 3군데의 스타트업과 CTO로 엮인 건데 3개쯤 되니까 그들의 핵심 오류가 무엇인지 그 사이에서 내 문제가 무엇인지도 나름 명확히 보이는 것 같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해서 3월경에 아작난 회사는 대표가 일을 피하고 또 다른 임원은 열심히는 하는데 엄청나게 무능하여 오판을 신나게 했다. 그럼 결정은 직접 하겠다고 하니 그건 또 싫다고 하고 계속 일을 미루며 시간을 끌다가 바보같은 판단을 내렸다. 내 연봉이 높아 우는 소리를 하길래 무려 1/3로 깎아줬고 이 상태에서 4개월이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떨어져서 끝났다. 이 회사에서 배운 점은 우둔한 자가 힘을 가지고 설치면 싹 다 아작난다는 점이다.
5월 말쯤 시작한 회사는 젊은 친구들이었는데 대표가 오만하여 버렸다. 이 친구는 학벌도 나쁘지 않았고 내가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더라도 적절한 질문을 통해 그것들을 이해하고 즉석에서 응용도 할 수 있는 똑똑한 친구였다. 하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자기와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못하므로 나와는 가능성이 완전히 없었다. 그래도 이 친구는 싫지 않았던 게 본인의 오만함도 인정하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 기꺼이 행동하는 자였다. 그를 믿고 따라줄 동료가 붙는다면 성공할 것 같다. 내 취향은 아니다.
6월 말에 시작한 그 회사는 자금도 충분하고 법인 설립 후 제작한 콘텐츠도 훌륭하고 대표도 예의바르며 프로그래머가 일하는 중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묵묵히 해주는 훌륭한 회사로 보였었다. 내가 프리랜서로 있을 때 공동대표였던 자가 정보를 가로채고 대표에게 정보 유통을 하지 않으며 프로젝트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발각되자 대표도 빡쳐서 그를 해임시키고 내게 대신 사과하며 개발팀을 맡아달라고 했다. 내 취향 회사는 아니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이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에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내 회사인 솔티크래커스 일도 미루며 잠깐 한국 들어온 와이프까지 동원하여 진도를 신나게 뺐다. 그러던 며칠 전 대표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태도를 싹 바꾸며 사람을 기만하여 빡쳤는데 멤버들을 다같이 모아서 대조해본 결과 대표가 각자 멤버들을 1:1로 만나며 듣기 좋은 말로 정보를 날조하여 조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공동대표였던 그 자와 똑같았던 것이다. 성격에 문제가 있거나 역량이 부족하면 같이 술이라도 쳐마시며 패치하면서라도 같이 갈 수 있지만, 정보를 조작하며 웃음으로 직원을 기만하는 벌레같은 새끼가 대표인 회사라면 나는 코드 한 줄 혹은 설정 한 줄 혹은 컨설팅 한마디도 제공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상대방이 완전하지 않아도 한두 가지 특수한 장점이 보이면 다른 단점을 모두 미화시키고 장점으로 변화시켜서 끌고 가다 보면 멋진 그림이 나오리라 믿는 경향이 큰 것 같다. 한국 사람들과 십육 년쯤 일하다 보니 명확한 단점이 보이더라도 "뭐 다들 그런데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잘하는 걸 계속 잘하게 하자" 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단점을 내가 떠안아야 되는데 이러면 주어진 책임 이상으로 일해야하고 이러다보면 내 스트레스가 커져 그들이 사소한 실수를 하더라도 엄청나게 폭발하게 된다. 앞으로는 내 일이 아니면 절대로 도와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과, 모든 상황이 다 훌륭하면 어느 한놈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식으로 사람이 모험을 피하게 되고 보수적으로 변해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건 상대방의 문제점을 충분히 지적하여 기다려주며 절차대로 처리하지 않고 급하고 오만한 성격탓에 멋대로 책임을 떠안고 단점마저 미화해 버리며 상대방의 성장 기회를 빼앗은 내 문제가 아닐까. 내가 쌍욕하며 피한 회사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렸다면 시간은 좀 더 걸릴지라도 튼튼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을거다. 결국 급한 성격과 욕심이 모든 것을 망치는 원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라는 인간이 열심히 노력하여 급한 성격과 욕심을 버릴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이렇게 계속 부딪히며 나를 알아가고 그렇게 분석한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갈 뿐이다. 이 글 또한 내 평판에 좋을리는 없지만 나라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더 명확히 하고 서로 시간낭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성급함과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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