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검사 시점에 스스로를 어느 롤로 지정했느냐에 따라 다른 값이 나온다. 질문지에 나오는 타인과 내 관계의 생존주기에 따라 다른 답을 하게 된다.
정규직 회사 동료들이나 오랜 친구들처럼 긴 관계들을 대할 때와, 프로젝트성으로 동일 목적을 가지고 수개월간 끈끈해졌다가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대할 때와, 식당에서 마주친 사람들처럼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가 다르다.
나는 주기가 짧을수록 친절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마음껏 잘해줘서 앞으로 내게 염치없이 잘못된 것을 기대하게 되더라도 서로 다시 볼 일이 없다. 나는 이들에게 나를 이용하고 속이기 위한 다음 번이라는 기회를 절대로 제공하지 않을 거라 경계할 필요가 없다.
프로젝트성 관계에서는 인권의 중요도가 내려가고 모든 것을 업무 위주로 생각한다. 이런 태도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친절히 대하되 업무에 깊이 관여하지 못하게 막는다. 일이 제일 중요하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판단 근거로 떠올린 사건에 따라 무작위로 내향 외향성이 갈리게 된다. 근본적으로 이런 타입은 내향으로 분류해야 하겠지만 스테이크홀더를 대할 때를 떠올린다면 외향적으로 분류해야 할 거다.
긴 관계들은 눈앞에 닥친 개별 사건들이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관계를 이어나가는 과정에 연료로 태워지는 어떤 매개체로 사용되는 것 같다. 나는 개별 사건들을 매번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깊게 주의를 쏟는 선천성 ADHD라 긴 관계들을 몹시 불편해한다. 여지껏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이따위 사건에게 밀린 것에 대해 자존심 상해하고 사건 자체에 함께 집중하는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본인이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시점에는 외향적으로 나오고, 정신이 건강할 때 검사하면 내향적으로 나온다.
맥락에 따라 다른 값이 나오므로 조금도 신뢰할 수 없지만 SNS에서 자신의 MBTI를 밝히는 행위는 나쁘게 보지 않는다. 맥락이 SNS로 한정되면 MBTI는 그 자체로의 힘을 가지기보다 관계 유지의 연료로만 쓰이고 버려지는 스몰톡 주제로 전락하는데 나름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케이스로 사주 명리학과 점성술이 있다. 일단 대분류만 보더라도 명리는 육십갑자라 크게 일주 60개(10천간×12지지÷2)로 성격 유형을 나누고, 점성술은 해와 달이 어느 별자리에 위치했느냐로 크게 144개(12×12)로 분류한다. 미신 갑으로 알려진 사주와 별자리도 분류가 많아 재미있고 스몰톡 주제로 한정 지으면 사회적으로 유용하다. 심지어 사주와 별자리는 질문지를 작성하지 않고 생일만 가지고도 분류가 되므로 과학적 자세로 보면 어이가 없겠지만, 사회적 관계에서 보면 서로의 성격에 대해 재미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귀찮은 질문지를 채우는 수고를 안 해도 되니 접근성이 좋아 스몰톡 용도로 볼 때 MBTI보다 10배쯤은 더 훌륭해 보인다.
스몰톡 용도로 좋다는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질문지를 채우거나 생일을 채우거나 여튼 사람의 성격 유형을 몇 가지로 분류한다는 그 지점에서 사람들이 재미있어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을 자기만의 사고방식에 갇혀 제한된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에 매우 익숙한데, 이 주제가 나오는 즉시 메타인지 스위치가 켜지고 각성도가 올라가며 최근에 자신이 겪었던 사건들을 새로운 시점으로 재평가하는 계기가 돼서다. 추가로 유교문화에 길들여져 불필요한 죄의식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주제에 영향을 받아 자존감이 회복되는 부수효과도 있다.
타임라인에서 MBTI 까는 글을 보고 즐거워서 나도 합세해 까는 글을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체력 저하로 그만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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