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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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어느 2월부터, 제 블로그에는 온통 염장 포스팅이 가득했었지요. 요 바로 앞 글인 '회피성 성격에 대해' 에서는 염장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내용에 살짝 묻어가기 권법을 써보았으나, 댓글에서 바로 지적 아닌 지적을 받았고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대놓고 썼던데?' 를 말하길래.. 이 포스트를 포함하여 당분간 염장글은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패러그래프만 빼고요.

게으름 관련된 책에도 많이 써있는 말이지만,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처리하지 않고 미뤄둔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경우 익숙하고 오래했으니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 청소하는 것도 좋아하고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하고 뛰는 것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청첩장을 조립하는 등의 단순 노가다도 좋아합니다. 머리 좋은 분들은 그런 일들은 단순하고 지루해서 재미없다고 하던데, 저 같은 경우는 단순하고 지루한 것도 별로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도의 회피란 이런 것이지요 -.-)

일을 하는 순간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 나쁘지 않다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즐거웠다는 이야기네요. 어느 명언집에서 봤던 글에서.. '일은 원래 재미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댓가로 당신이 돈을 받는 것이다' 란 내용이 있었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이 항상 재미있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족쇄가 일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되네요.

재미있는 일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러기엔 제가 귀가 하도 얇아서 -_- 돈을 만들어내기도 어렵고, 돈이 아니더라도 저처럼 자주 문맥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함께 일을 하지 않더라도, 짧은 문맥.. 2-3일만에 열심히 만든 서비스가 있을 때, 어쩌다 그 프로그램, 그 서비스의 골수 고객이 생겼는데.. 이미 개발자의 문맥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으니 유지보수가 제대로 될리도 만무하고 새로운 기능 추가 제안도 무시하기 아주 쉽습니다.

그래도 뻔뻔하게 무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 넓은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도 밥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어영부영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지요.

아/무/튼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진 않는데, (do)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서 (못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고) 하지 못한 일에 대해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미루고 미루다가, 미뤄진 일들은 더 크게 보인다고 더 스트레스 받고.. (while)

일을 시작하면 몰입도가 상당히 크고 재미가 있는데, 몰입을 한다는 것은 현재의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며 새로운 일 (하려는 일)에 성의것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시간을 투자해서.. 라는 말꼬리를 잡아보자면 시간만 투자하기는 쉽습니다. 하는 척 하거나 .. 대충하거나..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게 아니겠죠. 충분히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정신력도 쏟고 관심도 쏟고 이전 컨텍스트를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그렇게 하면 쉬운데..

가끔 일에 몰입하기를 성공했을 때 (100%는 아니고) 열심히 일을 하다가.. 분할 정복으로 하던 일 중 하나의 조각이 끝났습니다. 두번째 조각을 시작하면 됩니다. 마침 컨텍스트는 그 일로 90% 이상 채워졌기 때문에 두번째 조각을 시작하는 데 드는 정신적인 비용은 0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시작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한다면.. 만약 다른 Task 들은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 5분, 10분, 15분 정도이고 마감기한은 이미 지났으며 그 Task의 완료에 의존성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많은 Task와 Resource 들이 있다면.. 아아 그들을 외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영부영 이렇게 쓰다보니 이거 무슨 Job Scheduler 도 아니고 -_-

하여튼 미련하게 일해서 하나의 Job 만에 집중되어 숨풍 숨풍 Job을 끝내던 시절은 어느덧 사라지고 어설프게 튜닝중인 Scheduler를 탑재하여 이리도 고생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Grid computing 쪽의 스케쥴러 알고리즘 논문들을 찾아볼까.. 하지만 저라는 Resource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Task 들을 위해 순서도 없고 그냥 죽 써내려간, 도저히 읽으라고 쓴 글이 아닌 이 포스트를 마치려 합니다.

지금도 뭔가 하려던 일을 마음 안상하며 미루기 위해 블로그에 글 쓴 거랍니다. 아하하하하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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