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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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의 61-62 페이지 인용합니다 .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을 회피할 때, 그 책임을 다른 어떤 개인이나 조직 등에 떠넘긴다. 이것은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나치즘과 권위주의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이를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책임지는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백만, 천만의 사람들이 하루하루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한다.

나의 친구 중 한 사람은 아주 똑똑하지만 침울한 사람이다. 내가 그대로 놔두면 거침없이 그리고 유창하게 우리 사회의 압제적인 세력들에 대해 얘기를 토해 낸다. 인종 차별, 남녀 차별, 군비 확장 그리고 지방 경찰관들이 자기 같은 사람들이 머리를 길게 기른다고 귀찮게 구는 것 등등에 대해 흥분을 하며 얘기한다. 나는 여러 차례 "너는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다" 라는 것을 지적해 주었다.

우리가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그만큼 부모는 우리에게 지나친 지배권을 갖게 된다. 사실 부모는 우리를 잘 기를 책임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 부모가 억압적인 태도로 아이를 가르치면, 아이들은 자발성과 선택 능력을 제대로 기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제한적이지만 건강한 성인에게는 무한대로 주어지기 때문에 선택 능력의 미숙은 큰 문제가 된다.

때로 우리는 두 가지의 나쁜 일 가운데 덜 나쁜 것을 선택해야 할 경우가 있다. 이런 선택 역시 우리가 결정할 문제다. 물론 이 세상에 압제적인 세력이 있다는 점에서는 나도 그 친구에게 동의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세력에 대응하고, 다루는 방법들을 단계적으로 선택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경찰이 장발을 싫어하는 지방에서 사는 것도 그의 선택이고, 긴 머리를 그대로 기르고 있는 것도 그의 선택이다. 그에게는 다른 도시로 이사할 자유도 있고, 긴 머리를 자를 자유도 있으며 또 장발족이 당하는 불이익에 항의하는 캠페인을 벌일 수 있는 자유까지도 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영리한데도 이런 자유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커다란 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정치적 세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슬프게 여기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자유를 사랑한다는 것과 자유를 방해하는 압제적인 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실제로는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여 남에게 주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선택을 하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에 삶을 적대시하는 그 친구의 태도가 바뀌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다수의 환자에게 존재하는 '무기력함'은 자유에 대한 고통을 피하고 싶은 욕망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이나 문제에 대해 책임질 줄을 모른다. 그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사실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치유되고 건강해지려면, 조만간 성인의 생활 전체가 개인의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배워야만 될 것이다. 그들이 이런 것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런 것을 수용하지 못하면 그들은 영원히 자신들을 희생자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

Comments

2 thoughts shared

01
N

neonatas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나는 글.

02

쭝쓰

스캇 펙 박사님의 책들은 읽을때마다 느낌이 많이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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