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을 시작하며 드는 생각: 경험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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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와서 영어에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language swapping을 하며 조금씩 런던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던 며칠전 집을 렌트하고 어제는 IKEA에 가서 가구들을 지르기 시작했다. 집세도 6개월치 미리 냈는데.. 와이프 학비에 생활비에 하다보니 이제 잔고도 얼마 남지 않았고...

그래서 2-3개월 후에나 하려던,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거창한 건 아니고 agency에 이력서 던지기와 구인 게시판을 돌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이 requirement로 있는 글들을 보고.. 맘에 들면(?) 이력서랑 커버레터 하나 작성해서 던지고. 그런 짓들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아직 구직이 절실하지 않은가보다.

구인 글들을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은.. commercial experience를 많이 요한다는 것이다. 뭐 경력자 좋아하는 것이야 어느나라나 똑같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회사에 취업해서 뒹굴지 않고도 경험을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도대체 진짜 경험과 공부만 한 사람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를 머리속에 굴려보고 싶어졌다.

기왕 생각하는 김에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서론은 여기까지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경험을 찾아보니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이라고 한다. 사전은 사전이고.. 뒤죽박죽으로 머리속에 지나가는 것들을 나열해보면

한번 겪어보았다거나 *그거 나 한 번 해봤는데..* 는 '경험있는' 축에 잘 껴주지 않는다.
이론만 달달 외운 게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이론을 충분히 곱씹으며 내재화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여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 또한 '경험있는' 축에 잘 껴주지 않는다. 증명하기가 어렵고, 그짓말쟁이라면 누구나 주장할 수 있기 때문.

그럼 왜 그들은 '경험있는' 축에 잘 껴주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경험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보다 왜 더 쓸만한 것인가?

넓지 않은 폭의 많은 경험은 사고의 흐름을 통제하게 마련이다. 경험자는 자기가 시도했던 방법이 통했고 그것에 만족하면 다른 방법을 시도할 이유가 전혀 없다. 새로운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는 게 지루해져서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기업이 새로운 방법을 원할까? 뭐하러 원하나. goal은 정해져있고, 경험자는 그 goal에 최소 1번 이상 도착해본적이 있다. 그러므로 경험자를 사용한다는 것은 goal이 명확하고 모험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보통 회사는 경제적 이윤을 추구해야하기 마련인데 goal이 명확하고 그곳까지 도달하는데 소요되는 리소스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더 빠르고 효율적인 길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비경험자를 채용하여 모험을 하는 것은 바보짓일 것이다.

마치 당연한듯이 기술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goal이 명확한 기업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저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런치.. 성공적인 유지.. 성공적인 관리.. 성공적인 cs... 온통 귀여운 아가들의 목표처럼 보인다.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등등.

그리고 goal이 명확하게 정해졌는데, 경험자를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그 goal은 가치가 높을리 없다. 그렇다면.. 적절한 가치를 만들 수 있는 goal을 설정했을 경우 경험자를 구하기 쉽지 않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구하려든다. 여기서 또 문제. 그것이 정말 비슷한지 비슷하게 보이기만 하는건지 알 방도가 없다.

허허.. 쉽지 않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고 심리적 장애없이 맘껏 쳐달리자 마인드였었는데 시간이 흘러 그것의 최후를 본 후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진짜 경험같은 것을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경험자와 비경험자를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예외 상황에 대한 능수능란한 처리

능력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 시점에서 어떤 예외 상황이 얼마만큼의 빈도로 나타나는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때 무엇을 skip 할 수 있는지, 시간이 남을 때 무엇을 더 공부하면 되는지, 특정 상황에서 무엇에 가장 집중해야하는지 등이다. 그리고 이 내용들에 대한 믿음과 확고한 자신감이다. 왠지 듣기만 해도 시간이 필요해보이지 않는가? 경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것들은 책에서 가르켜주지 않는다. 좋은 책도 가르켜주지 않는다. 좋은 책이 가르켜준다고 해봐야 논란의 여지가 상당한 내용으로 비춰지기 쉽상이므로 저자들도 꺼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대단히 주관적이라 공유자 입장에서 쉽게 남에게 가르켜주기 어렵다. 책임지지 못할 내용이기 때문이다. 마켓은 더럽다. 마켓은 현실이다. 가치가 높아서 별로 공유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왠지 이런 것들이 책으로 출판되면 세상이 발칵 뒤짚어질것만 같다. 가치체계가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들을 찾아 떠나야 하는데 이러면 모두가 힘들어지기 때문. 이런 일을 환영하는 것은 기득권층이 아닌 사람밖에 없지 않을까.

경험자로부터 배우기를 포기한다면, 적어도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들을 명확하게 인지하여 집중 공략하면 효율적으로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경험에 대해 한번 언급했지만 이것들은 도저히 '요약본'으로 추릴 수 없는 내용이다. 현란한 형용사와 바디 랭귀지로 동영상 강의를 하더라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그 '요약본'은 경험자밖에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당신이 어떤 일에 최소 5년 이상의 경력이 있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당신의 경험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경험을 쌓기 전인 5년전으로 돌아간다 치고, A4 용지 한장에 5년전의 당신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적을 수 있다면 뇌와 시간을 5년전으로 돌려서 더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현실은 우연으로 도배되어 있어 그 시간을 최적화할 수는 없겠으나 사심으로 낭비된 시간들을 상당부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는 시간은 절약할 수 없다. 방황하던 시간도 절약할 수 없다.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는 방황이 불가피하다. 아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5년후 자기 자신의 충고를 무시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도 싶다.

원래 5줄짜리 짧은 포스트를 쓰려고 했는데 문득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장문을 쓰고 나니 결론을 내야할 것 같은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래도 구색 맞추자고 억지 결론을 낼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마치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시 출퇴근 따위 말고, 끊임없이 저지르고 수습하고 책임지고 목표를 설정하고 조심성 따위는 해외특송으로 대서양에 던져버리고 개처럼 달리는 것. 회사에서는 이것을 해도 좋을지 안좋을지 1일 이상 느긋하게 고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추측하지 않고 계측할 수 있는 리소스 범위 안에서 결정하고 그대로 달릴뿐이다. 누가 감시하지 않아도 그게 옳은일이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고, 멈추었을 때의 손실을 보고 싶지 않아서 한다.  긴장감이 없으면 피가 돌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놀면서 일하는 것은 없나보다. 놀거나 혹은 일하거나. 일터에서 대부분 놀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어 유감이다. 그저 놀았던 흔적을 일로 인정해준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Comments

2 thoughts shared

01
T

twinpix

[딴소리] 하지만 놀면서도 가장 많은 일을 하셨단 사실도 잊지 않고있는걸요 (!)

02
R

rath

@twinpix 제가 많은 일을 했다니.. 믿을 수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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