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훨씬 쉬운 활동이다.
글쓰기는 순발력을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족할만한 단어나 구가 떠오르지 않으면 글쓰기를 얼마든지 미룰 수 있다. 다른 책들을 뒤적거려볼 수도 있고,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컨디션을 바꿔 두뇌 상태를 요리조리 바꿔볼 수조차 있다. 이런 짓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짧으면 5초가 될 수도 있고, 길면 10분이 넘어갈 수도 있다. 혹은 '오늘은 글 쓸 기분이 아니야.' 하며 적합한 표현을 찾는 행위를 연기할 수도 있다.
순발력을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글을 쓰는 중에 생기는 가벼운 압박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수 있다. 말하기에서는 2~3초의 멈춤도 대단히 뻘쭘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극복해 나가는 편이다. 말하는 사람은 눈앞에 놓인 현실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간의 타협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제되지 못한 수많은 non verbal language들이 발산되기 때문에 구지 혀를 쉬지 않고 놀리지 않아도 청자에게 메시지들이 전달된다.
또,
글의 힘을 빌리면 이상적인 정보를 구성하기가 대단히 쉬워진다. 문장 구성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첫 단어를 쓰기 전부터 글을 다 작성하여 publish 되기까지의 과정이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는다. 반면에 말하기에서는 주제에 대한 준비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준비해둘 수도 있지만, non verbal language들이 계속 나가므로 이녀석이 준비한 것을 줄줄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마음속에서 우러 나오는 메시지인지 구별하기가 쉬운 편이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는 문맥을 저자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관심없는 분야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다. 흐름을 타다 어쩌다 관심밖의 주제가 엮이게 되더라도 능숙하게 휙휙 다시 돌아올 수가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주제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배려이기도 하다.
주의가 산만한 사람이라면 자기가 끌어가던 문맥조차 잊어버릴 수 있는데, 글을 쓸 때는 언제든지 방금 전에 쓴 문장을 쓱- 보면 된다. 하지만 말하기에서는 기억력에 의존해야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상대방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더라?' 라고 물어보는 굴욕을 피치 못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쓰기는 참 쉬운 것 같다.
반면 말하기는 너무 너무 어렵다.
이 주제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다. 가볍게 코멘트 남겨주시면 친히 피드백으로 다시 만나뵐 것을 약속드린다.
Comments
6 thoughts shared
위 내용의 글의 장점에 대해서는 동의하긴 하는데, 난이도에 대해서는 반대라고 봅니다. ㅎㅎ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생활하면서 지속적으로 어느 정도 계속 연습이 되지만, 글쓰기는 그러기가 힘들죠.
hjazz
후후 나도 댓글 달아줘야지. 직접적인 소통보다는 간접소통에 능한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알랭드 보통이란 사람도 거의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인데 왕성한 읽기, 쓰기 활동으로 그걸 매꾸고 있다 그러더라고.
bluex
오늘 시간이 많네.... 여기까지만 댓글 놀이해야겠음 (너무 없어 보여서 ;;;; )
피아노 연습과 연주에 대해 글을 써 놓었더군요.. 황장군께서.... 왜 황장군에게 말하기가 어려울까 생각해봤는데
예전 황장군의 생활이 떠오르더라구 책을 읽기 너무 좋아하지만 TV 프로그램은 전혀 안보는.....
프로그래밍 하기 너무 좋아하지만 사람과의 대화는 많이 안하는.....
내가 분명 단언하건데 말하기 연습을 조금만 한다면 황장군은 말하기연주인 화술의 천재가 되어 있을걸?
아마 아인슈타인이 그랬다지? 전혀 말을 안하다가.... "아 우유가 너무 뜨거워요~!!!"
부모가 깜짝놀라 그동안 왜 말을 안했냐했더니 그동안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라고 답했다고 읽은거 같아.....
대중과의 대화가 그동안 별로 필요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한번 생각해보고... 답변 궁금하니 나중에 확인해 보겠음
안녕~ 브리티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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