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간 음양오행론을 살짝 공부했었다. 맞냐 틀리냐 미신이냐 하는 것은 논할 가치가 없다고 보이며 이러한 학문이 수천 년간 존재했고 이것에 의지하는 인간들의 수가 적지 않았고 꾸준히 존재했다는 역사에 포인트를 뒀다.
완전히 개똥학문 취급을 받아 박멸당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그럴싸해 보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사주팔자의 경우 어떻게든 세상에 존재할 것만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성격적 특성과 기질들이 대부분 나열되어야 한다. 사주팔자에서 정의한 각 인간의 기질에 대한 목록을 보다 보면 이런 결론에 도출할 수 있다. "최소한 중국에서는 졸라 옛날부터 이런 다양한 인간들이 꾸준히 존재했구나".
그리고 사주팔자로 오행을 뽑는 로직을 검토하다 보면, 겨우 수십 년에 걸쳐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이 꽤 균일한 빈도로 세상에 출현했다는 것을 역추적할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인간들이 사주팔자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 유전자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 가정교육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 그 사람이 속한 사회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아무튼 이렇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인간들이 내 주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얻은 결론은 내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1)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지력이란 신뢰하기 어려운 속성이다 2)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인간이 동시대에 존재한다면, 상대방 입장에서 무언가를 검토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오만방자한 것이다. 인간들은 불특정 다수의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만큼의 출중한 역량을 갖출 가능성이 매우 낮다. 3)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당신에게 엿을 먹이는 게 아니다. 4) 당신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해도 누군가에게는 엿을 먹일 수 있다 5) 맞냐 틀리냐에 대한 검증이 거의 불가능하여 가벼운 대화 소재로 활용하기 매우 좋다 6) 타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해독하기 어려웠으면 사주팔자라는 학문이 발생했고 그 근거를 따지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간 의지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왠지 씁쓸하다.
사주팔자는 통계에 가까운 것이라 보여서 딱히 대차게 까기도 어려워서 좀 재미가 없고, 풍수지리는 가장 덜 미신스러워서 역시 흥미가 없다. 진정한 판타지는 인사의 꽃이라 불리는 육임인 것 같다. 아직 덜 공부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육임인데 인간의 성격 특성상 육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육임점은 대놓고 미래를 점치는 건데, 방문자가 궁금해하는 미래의 특정한 사안에 대해 방문한 일자와 시각에 따라 총 6가지의 큰 결론을 내린다. 매우 좋아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잘 됨, 열심히 하면 잘 됨, 되긴 되는데 딱히 이익은 나지 않음, 뭘 해도 안 됨, 초반에는 열라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망함, 횡설수설하러 옴, 이렇게 6개다. 육임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6개 중에 아무거나 뱉을 수 있고 맞출 확률은 16.6%나 된다.
그리고 육임에서는 방문자가 왜 왔는지도 미리 계산할 수 있는데, 이는 방문자의 생시를 몰라도 되는 거라 혹시라도 맞으면 방문자 입장에서는 깜짝 놀라며 점 치는 사람의 결론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생시도 모르는 낯선 사람이 자기가 왜 왔는지 1초 만에 안다면 당연히 빠져들지 않겠는가. 육임은 방문자가 방문하는 날과 시만 알면 그놈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으로 방문하는 것이며, 어떤 사안으로 방문하는지, 그리고 결론이 무엇인지 계산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방문자가 문을 여는 순간 "돈 문제 땜에 왔구만", "남편이 바람났구만" 이런 말을 뱉을 수 있고, "넌 어차피 안 돼. 그냥 가봐. 복채 안 받을게" 멘트를 날릴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롭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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