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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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방송국 작가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웹서핑 중 준비하고 있는 내용과 관련된 내용을 여기서 보게 되었다는 거였다.

최근 포스팅 했었던 회피성 성격장애가 아닌가 생각했으나 어제 작가와의 간단한 전화인터뷰를 통해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일중독 이였다 -_-

아마도 작가가 검색한 포스팅인 이 글(문제점 자가분석)이였을 거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을 포스팅 한 시점이다. 2005년 10월이다. 생각해보니 나의 일중독 성향은 2005년 11월 입사한 회사 이후로 많이 절제된 상태다. 뭔가 삐뚤어진 것 같긴 한데, 2005년에 여자친구가 한 번 생기고 난 이후부터 일중독의 고질적인 성향은 고쳐지지 않은 채 속으로 혼란스러워하며.. 더 이상 자기관리쪽이 아닌 이상심리학과 철학 같은 곳으로 관심이 돌려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때 포스팅했던 내용에서 내게 해당된다고 판단했던

  • 쉬는 것이 견딜 수 없다.
  • 주말이나 휴일에도 일을 한다.
  • 언제 어디서든 필요하면 일할 자세가 돼 있다.
  • 일이 많아 휴가 내기가 힘들다.
  • 퇴근 후에도 내일 일을 걱정한다.

이것들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일터에서는 나를 접한 사람이라면 철저한 이미지관리 -_- 로 위의 5가지 항목이 내게 해당된다고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정말 이상심리학에서 해결할 문제고 ;; 5가지 항목은 근 2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쉬는 것이 견딜 수 없다. 주어진 일을 꼭 끝낸다거나 한 번 맡은 일은 꼭 끝낸다. 뭐 이런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생산적이지 않은 어떤 것을 하고 있다는 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름) 나 역시 좋아하는 사람과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아주 즐거워진다. 다만 그것도 일인 것만 같다.

쉬면 쉴수록 난 더욱 의욕을 잃어버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아마도 측근들이 '너무 일 열심히 하지마' 라는 소리를 듣고 물리적으로 일을 안했지만 결국 두려움은 제거하지 못하여 이상심리학쪽으로 빠지게 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리라. 하여튼, 견딜 수 없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일을 한다. 맘편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날이다. 도대체 이런 날 왜 일을 안해야되는건가. 최근에는 주말이나 휴일에는 일을 하지 않는데, 그 이유로는 협업자들과의 진도 맞추기와 주위 사람들의 눈을 의식, 스스로 '난 주말이나 휴일에는 편히 놀 수 있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싶어서 였을 것이리라.

언제 어디서든 필요하면 일할 자세가 돼 있다. putty, gnome-terminal, Terminal 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일할 자세가 되어있는 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

일이 많아 휴가 내기가 힘들다. 따지고 보면 전혀 생산적인 것이 아니다. 진정 휴식과 운동의 중요성을 아직도 완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아직도 범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도 그럴싸한 휴가를 다녀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되거나 이런 환경을 만든 누군가를 탓하는 마음도 없다. 다만, 할 일이 많아 아직 휴가 갈 타이밍이 아니라고 느낄 뿐이다.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이유는, 이것이 실제 업무 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

퇴근 후에도 내일 일을 걱정한다. 이것은 많이 고쳐진 것만 같다. 아무튼 이것도 상당히 좋은 게, 다음날 일어나서 업무 Context를 머리에 탑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쉬지 못해 재충전을 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는 여전히 실제로 '일'에는 큰 도움이 안되는 것만 같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 혹은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들과 일중독은 전혀 관계가 없다. 2년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중독은 단지

몸 속에 있는 에너지가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자율성을 침해, 정신적인 균형과 조절 능력을 잃게 하는 정신병인 것이다.

일중독이 위의 정의대로 라면 나의 일중독 성향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일하는 사람은 제1기 환자, 자기가 일중독증에 걸렸다고 자각하거나 일부러 여가를 즐기고 취미활동이나 봉사활동에 매달리면 제2기 환자, 어떤 일이든 환영하며 주말과 밤에도 일을 하고 약물에 중독된 것처럼 건강이 무너질 때까지 일에 매달리면 제3기 환자다.

쳇, 난 2기와 3기를 넘나드는 환자 -_- 그나마 무절제한 알콜 섭취가 일중독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주기에 신나게 술을 마시며 산다. 사람이 좋아서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런 내가 너무나도 맘에 안들어서 그런게지.

Comments

12 thoughts shared

01
J

jef

증상은 똑같은데 문제는 정작 일하다가 딴짓하는건 어찌해야.. ㄷㄷ

02
R

rath

'자기 자신에게 거리두기'로 모든 구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던데.. 가능할까!

03
N

neonatas

'산소 긍급 끊기, 혈액 대량 방출하기, 독극물 다량 섭취' 등으로도 모든 구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더라..

04
R

rath

뒈지란 말이냐 --;

05
N

neonatas

운 좋으면.. 완전 뒈지지 않고. 구속에서만 자유로와진 상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06
R

rath

오.. 그럴싸한데? (씨익)

07

신상호

일이 조금 덜 바뻐졌다 생각되면 세부에 한번 놀러오세요. 저랑 놀면 혹 일중독이나 회피성성격장애나 둘 중 하나 정도는 어떻게 안없어질려나?

08
S

swizard

혹 일이 필요하면 일도 드려요. 일하는지 노는지 한번 내기해볼래요? 일하면 비행기표 환불(뭐 일하면 그만큼 개발되는거니 그것도 좋고..ㅋㅋ)

09
S

swizard

이국에서의 낯선 생활이 도움이 될거 같은이유.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없음 필리핀 친구들이 맘이 착하고 한국사람 좋아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도해볼수도 있음 새로운음식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서의 충격에 의한 간접적 치료 등등등

10
R

rath

많이 땡기네요. 안그래도 나가서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나가면 좋을 거 같아서가 아니라 여기서는 도무지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지 않아서-_-; 머리속에 끝나지 않은 일들이 둥둥 떠있지 않는 한, 맘 먹고 놀면 잘 놀아요. 그렇다고 진짜 재밌게 노는 것도 아니지만; 일이 언제 덜 바빠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휴가도 남은 날이 거의 없지만 -,.- '세부'라.. 기억해두겠지 말입니다. 필리핀!

11
S

swizard

오세요.

12

차민숙

저도 2기에 가깝군요..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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