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성 성격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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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심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시기가 맞습니다만, 극심한 회피성 성격인 저는 와이프를 만나면서 회피성 성격을 많이 고쳐가고 있습니다.

본질에 가까워지면서 제 회피성 성격이 아주 어려서부터 저와 함께 성장해온 제 자신의 일부임을 알게 되었으며, 괴롭고 힘들지만 서서히 문제에 직면해보고 있습니다.

요새 즐기는 것은 제 생활 습관 중 회피성 성격으로 인해 생긴 습관들을 하나둘씩 잡아가는 일입니다.

회피성 성격을 가진 사람이 숨어지내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요? 회사 일 입니다.

피하고 싶은, 난감한 모든 종류의 잡무들로부터 해방해주는, 그 이름도 해맑고 깨끗한, 회사 일. 회사 일 외로 생긴 모든 일들을 아주 쉽-게 회피할 수 있게 해줍니다.

회사원은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게다가 밥 먹고 살 수 있게 봉급을 주는 원천입니다. 단순히 생업의 문제로라도 여러가지를 회피할 수 있게 해주지만, 당장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는 사람일 경우에도 얼마든지 단아한 이유를 만들 수 있습니다.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한 번 주의깊게 살펴보십시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지켜보면 됩니다. 하는 일이 자주 바뀌던가요? 아- 아- 두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고, 일 이외의 것에서 회피한 그 사람은 일이란 world 내에서도 열심히 회피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일하다가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으면 다른 일로- 또 다른 일로- 슥- 슥- 슥-

이것이 참 매혹적인 회피 장소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회피하기 위해서는 일상에게 틈과 여유를 주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분야도 계속 바뀌면서 쉬지 않고 일한다니요! 해당 업무 스킬도 디룩디룩 쌓여갈테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와- 정말 대단하세요' 라는 칭찬까지 받습니다.

이유가 이렇더라도, 사실 이렇게 칭찬받는 것이 규탄받아야 할 일이거나 손가락질 받을 일만은 아닙니다. 현실을 떠나 은하계 저- 어느 세상에서 열심히 살았으니, 현실은 회피했을 망정 그 세상에서라도 칭찬을 받아야할 것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한 회사 내에서 하는 일을 자주 바꾸기도 하지만,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으면 회사를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회사 외적인 것을 계속 피한다는 것이지요.

도대체 그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계속 회피하는 것일까요?

아- 아- 그것은 이상심리학 시리즈 회피성 성격장애를 읽고 작성한 작년 8월 포스트에 있습니다.

저도 극심한 회피성 성격을 가진 사람인데, 회피하는 행동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나름 고도의 지능적인 수법들로 사회적 문화적 통념, 윤리, 도덕 등에 빌붙어 다닙니다.

회피하는 생활도 자신의 마음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생활이기에, 본인 스스로 제 글을 읽든, 회피성 성격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읽든 사실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는 회피성 성격을 없애려는 마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편하거든요-

회피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안타깝게도 일시적으로 편한 마음이라 주기적으로 고뇌가 되풀이 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일들을 쉽게 회피하고 마음속 저- 깊은 골방 속에서 유유히 혼자 담배나 뻐억 뻐억 피며 쉴 수 있으니까요.

제가 여태까지 얻은 키는, 문제나 스트레스 상황이 생겼을 때 이것이 내 문제임을 받아들이고 괴롭고 진전이 전혀 없더라도 피하지 말고 느긋하게 싸워나간다. 입니다.

이 문구. 분명히 과거에 읽었던 수많은 자기관리, 처세책에서도 많이 읽었지만, 요즘 처럼 느껴진 적은 없었습니다. 유명하고 좋은 인용구들에 기대면, 자기 자신을 직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왠지 저것만 외우면 모든 게 잘 될것만 같은 기분에 도취되기도 합니다.

말 나온 김에.. 스트레스와 어려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제가 자주 선택하곤 했던 공부법을 하나 소개합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무수히 반복 훈련을 합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여 전혀 머리를 쓰지 않고도 할 수 있게 되면, 그 일을 해나감에 있어 스트레스나 어려운 상황이란 것은 없어집니다. 하하 -_- 이렇게만 쓰면 좀 식상해보이지요? 어떤 것을 배우기 시작할 때 아직도 전 의식적으로 이런 행동 패턴을 이용합니다. 프로그래밍을 한창 버닝할 시절.. 이클립스의 수많은 자동화 툴들.. 남의 예제코드 따위 안씁니다. 무조건 조낸 반복하는 겁니다. 2000년대 초 언젠가는 프로젝트를 잘 시작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싫어서, 프로젝트를 밥 먹듯이 시작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빈 디렉토리에서 vi 로 파일명을 새로 만들고 새 클래스를 만들고 메인 메서드를 만들고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줄줄 코드를 써내려 가곤 합니다. (코드의 품질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100번 반복하는 것은 좋지 않겠죠? 이 짓을 시작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잘하려고 이 짓을 하는 게 아닙니다. 괴롭거나 어려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 짓을 하는 겁니다. 인간적인 전두엽 쪽 뇌를 안쓰고 일하는 것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반복해도 머리를 써야하는 부분을 찾아 어떻게든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초 공부를 하게 되죠. 이런 연유로 기초에 다시 집착하게 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기초가 튼튼해!' 라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하하하

묘한 시각에서 본다면 '이것도 좋은 훈련 방법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네요. 어디까지나 이것은 부수입입니다. 따라하지 마세요 --

이 지경까지 되면, 회피성 성격이 만들어준 좋은 결과물(?)들도 쌓였습니다. 더더욱 버리기 어려워집니다. 아니 여태까지 잘 살아왔다고 충분히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회피성 성격을 버릴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여태까지 글을 제가 쓰고도, 회피성 성격을 버리지 않을 이유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회피하며 살다가 늙어 죽거나, 사고로 죽는다면 조금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쓰다보니 회피성 성격을 너무 좋지 않은 거라고 한 느낌이 있군요. 습관화된 회피가 아닌 자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회피성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피는 나쁜 것이 아니잖아요! 50m 앞에서 맘모스가 나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서 칼을 갈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인지하지 못하던 숨은 회피성 성격들을 깨닫는 데는 사랑하는 아내의 도움이 무엇보다 컸고, 그 다음으로 책의 도움이였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큰 챕터 1, 2를 추천합니다. 1부는 훈

Comments

9 thoughts shared

01
S

songsungkyun

결혼 많이 축하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도움이 무엇보다 컸고 <- 너무 부럽네요. 아직도 가야 할 길 네 안의 적을 길들여라 이 두책을 꼭 읽어 봐야 겠네요. 마음속 저- 깊은 골방 속에서 유유히 혼자 담배나 뻐억 뻐억 피며 쉴 수 있으니까요. T.T 지금도 골방에서 담배 피우며 이글을 보고 포스팅합니다. 정성스레 올려주신, 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02

유겸애비

부부는 닮는 다던데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난후에 두분다 성격장애를 멋지게 극복하셨길 바랍니다. 단, 반대로 닮아갈 수도 있다는거..^^

03
N

neonatas

나도 회피성 성격이 나쁘다는 생각은 안해.. 물론 "습관화된" 이 단서로 붙는다면 무엇이든 나쁨으로 연결될 소지는 있겠지... 뭐 그렇다고.. 뭔가 고치려는 지금 니 노력이 잘못됐다는건 아냐.. 장호와 장호의 사랑하는 아내가 좋은 변화를 이루어내리라 믿는다.

04

서문교

남자들은 귀찮음으로 부터 회피를 하겠죵...ㅋㅋ

05
R

rath

sonsungkyun// 저의 끄적임이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저 해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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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h

유겸애비// 반대로 닮은 들 어떠겠습니까. ㅎㅎ 성격장애를 극복하는 것도 미션이라면 미션이지만 무엇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성격을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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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h

neonatas// 와이프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제가 산으로 간 경향이 없지 않네 -.-; 의식이 의도한 대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1차 목표일텐데 그것을 얻기가 어렵네. 그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솔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하

08
R

rath

서문교// 여자들도 만만치 않던데 ㅋㅋ 귀찮음의 원인을 분석하는 건데.. 분석 과정 자체도 해야 할 일을 일시적으로 회피하는 아주 좋은 핑계 :$

09
S

songsungkyun

네 안의 적을 길들여라, 아직도 가야 할 길 이 책들 괜찮은거 같습니다. 저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하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것이 있을 수가 없겠네요, 조금씩 변화를 일어키게 하는 작은 자극들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P.S. 네 안의 적을 길들여라을 읽고 몇 년째 방치했던 욕실배관의 누수와 부엌싱크대에서 따뜻한 물이 안나온 것을 해결봤습니다.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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