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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rath.

   아, 오늘은 이 홈페이지 주인이자, 제 사랑하는 남편의 생일입니다. 사실 공개적인 편지라는 것이 조금 창피하고 두서 없이 지난 시간을 써 놓은 일이라 부끄럽지만, 편지를 하나 올리려고 합니다. 의도치 않게 RSS로 수신하시는 분들, 방문하셔서 읽으시는 분들, 내키지 않더라도 용서하셔요. (찡긋)

Dear rath.

   기억해? 서로 메신저로 간간히 연락을 하다가 마치 어릴때 손을 호호 불면서 추운 거실에서 썼던 편지처럼 귓속말로 서로 고민을 나누고는 했었잖아. 서로 ‘서울 사는 30대 남성’, ‘서울 사는 20대 여성’이 되어서 말야. 이제 내 귓속말 페이지에 그 글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정말 아쉽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서로를 위로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생생히 기억나.

   어느 날인가 집에 의자가 배달와서 조립을 하는데 너무 심심한거야, 그래서 너랑 전화를 하다가 얘가 커피를 마신다니 나도 갑자기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은데 우리집에 커피가 떨어졌었지 뭐야. 우리집도 커피 배달 해달라고, 나 배고프니까 짬뽕이나 카츠나베도 배달해 달라고, 기왕이면 의자도 조립 할 줄 알고 옷상자도 버려 줄 사람으로 보내 줬으면 좋겠다고,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면서 너는 점심먹는 것도 잊은 채로 40분이 넘게 통화 했었는데. 그 뒤로도 니가 내 앞에서 말이 없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처음에 사람들이 네가 말이 없다고 할 때 마다 나는 얼마나 이해 안됐는데! 참, 그리고 지금 내 남편은 의자 조립은 못하지만 설겆이를 잘하니까 괜찮아. 난 의자 조립 잘 하거든, 좋은 사람으로 보내줘서 배달 정말 고마워. 🙂

   그 날, 저녁에 영어과외가 끝났는데 얘가 저녁을 안 먹겠다지 뭐야, 그래서 생각난김에 전화해서 나오랬더니 바쁘다고 하고, 그럼 나오지 말던가 했더니 그말에 바로 나오겠다고 했던 너. 사실 청개구리지? 그날은 정말 계속 웃었던 기억 밖에 안나. 서로 덤앤더머라고 멍청한 짓들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너도 참, 방금 하품한 사람한테 왜 우냐고 물어보지를 않나-.-;;;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너의 3색 코디는 잊을 수가 없어. 또 그렇게 입으면 그 옷들 다 잘게 찢어서 베게 만들어 버릴꺼야.

   그 다음날도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그 다음날에는 밤새 또 메신저로 이야기 했는데. 그래, 그날이야. 내 생일에 내가 좋아하는 곡 연습해서 연주해 줄꺼라고 약속했는데, 너 월요일에 안 지켜놓고 너무 당당하더라? 그거 두고두고 삐졌을 때 마다 써먹을꺼야. 😛 그때 내가 그렇게 좋아 했는데!

   그리고 또 그 다음날 밤, 습관처럼 전화를 하다가 나 잠들었잖아. 근데 잠에서 깨기 전까지 한번도 네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잠깐 졸고 나니까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어릴 때 좋아했던 동네 이웃집 오빠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어.

   긴 통화와 함께 밤을 보내고 맞은 월요일. 둘 다 밤샘 대화에 지쳐서 실컷 자고 일어나서 지겹지도 않았는지 또 전화를 하다가 내 다른 사람 때문에 후다닥 전화를 끊었잖아. 그게 너무 미안해서 안절부절 못하다 메신저에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마음이 정말 이상했어. 정말 우리가 친하게 연락한 것은 며칠 뿐이었는데, 서로 통화하면서 남자나 여자로 안 볼 사이라 편하다고 하면서 좋은 친구 만났다고 좋아했는데, 어느새 이 사람이 내 감정을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는게 너무 무서웠어. 너도 그랬어?

   밤새 다 하지 못했던 말들이 마음속에서 웅웅거려서 멍하게 컴퓨터를 껐다가 켰다가 인터넷을 했어. 이게 무슨 바보짓인가 싶은데도 끝나지 않는거야. 그러다가 들어간 네 홈페이지에서 처음 네 노래를 들었어. 그리고 오후까지 멍하게 있으면서 그냥 계속 같이 놀고 싶다는 생각이 버려지지 않아서, 결국 우리는 다시 전화를 들었잖아. 막으려고 들고, 막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감정들은 이미 사랑일지 모른다고 나는 이제 생각해.

   그날 네가 했던 말 너는 잊었을까.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자고 일어나도 괜찮지 않더라.”라던,
   그날 나를 찾아와 팔보다 마음에 힘줘서 나를 꼭 안았던
   그때 그 느낌은 나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

   며칠이 지나서 우리가 첫 키스를 하기 전까지 우리 서로 뭘 하는지 서로 좋아하는지 무슨 감정인지 전혀 모르고 만났다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믿을 수 없는데, 정말 우리는 그랬어. 응, 이게 우리의 시작이었어.

   이것도 기억나? 1월 31일에, 내가 너 놀리면서 “괜찮아, 10년감이야.” 라는 말을 했는데, 너 ‘괜찮아, 신랑감이야.” 라고 들었던거? 사람이 말이 씨가 된다더니. 정말 니가 신랑이 될줄이야.-.-

   이날 이후로는 우리 거의 한시도 떨어진 날 없었어. 만나면 30시간, 집에 들어가면서 통화하고, 자고 일어나서 통화하면서 준비하고, 만나면 또 30시간. 날 춥고 오갈데 없어서 결혼하기로 했다는 말 가끔 사람들 안 믿던데, 정말 날만 좀 따뜻했어도 우리 결혼은 미뤄졌을지도 몰라.-.-

   그래도 어디든 좋았어, 함께 였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행복해, 함께 있으니까.

   이제 우리는 결혼했고 매일을 함께 나누고 저기 문너머에 지금도 네가 있어. 이게 해피엔딩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이 이야기에 엔딩은 아직 나지 않은거니까. 현실은 ‘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는거잖아. 어떻게 보면 두서없이 장황하게 우리의 시작을 이렇게 공개적으로-그러나 너 몰래- 쓰고있는 이유는 오늘은 네 생일이지만, 좀 더 뜻 깊은 선물을 우리에게 하고 싶었어.

   그저 함께 있고 싶었던 마음이 사랑이 되었고, 마음과 바램만으로 서로 같은 공간에서 숨쉬면서 살 수 있는 마법같은 현실을 만들어 냈다는 것. 믿어져? 나는 아직도 가끔 꿈 같아.

   생일이라는게 사실 그렇게 특별한 날은 아닐 수도 있지, 오늘은 그냥 금요일이고 스쳐지나가는 실낱같은 날들 중에 하나지만 그래도 태어나 줘서 고마워. 날 만나기 전까지 잘 지내줘서 고맙고,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 elle

p.s. 글로도 못다한 기억도 나누었던 말도 많지만 더 쓰다간 책한권 나올 것 같아
p.s. 정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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