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는 거짓말을 하지만, 마켓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픽션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20대후반이 되기 전까지 소설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지내다보면 그들이 좋은 소설을 추천해줄 때가 있다. 생산성에 직결되는 것에만 목숨을 걸었던 20대 초중반의 나에게 소설 읽기는 경멸에 가까운 것이였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천해주면 소설을 싫어하는 내 자아보다 그와의 관계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소설을 싫어하는 자아를 잠시 묻어두고 픽션을 읽어보게 된다.
읽어보게 된다. 읽게 된다가 아니라, 읽어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소설의 좋은 점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꾸며낸 이야기다. 거짓된 것이 아니였다. 정보성 글귀에서 사람들이 함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적혀있다. 물론 사실은 아니지만, 적혀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저자와 독자 사이에 깔려있기 때문에 마음껏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였다. 이 세상엔 논증에 실패한 훌륭한 지혜와 진리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이 소설이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에 나오기도 하는 것이였다.
그것을 깨닫고 난 뒤, 정보와 개념만을 원하는 내게, 소설은 쓸모있는 하나의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설들을 분석적으로 읽고 있다. 저자가 표현한 등장 인물들의 감성의 흐름을 타고 그 감정들을 유유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심하게 굴려서 감성의 흐름을 추적하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어떠한 개념 덩어리와 정보 덩어리를 추출해내고, 그것을 내 실생활에 녹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녹여낸다.
그런데 내 주위 멀쩡한 친구들을 보면, 나와 같은 짓을 하지는 않더라.
결국 아직도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마켓에서는 소설이 항상 최고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 널리 읽히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무협지가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무지를 일깨워줄 사람은 어디있는가.
Comments
4 thoughts shared
@기병석 트위터에도 나타나셨군! 난 잘 지내고 있음.. 뱃살도 많이 빠졌음.. ㅋㅋ
추울 때 생각나는 사람이라.. 더울 때 생각나는 사람보다는 괜찮다(?)는 생각이야. 후후 비행기값 없으니까.. 런던 차이나타운 양고기 고고고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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