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쯤 읽은 책으로 분류가 처세도 아니고 자기관리도 아니다.
나에게 처세책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과 그럭저럭 잘 지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자기 자신의 내면은 전혀 바꿀 생각이 없고 외면적인 스킬만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처세책 중에는 쓰레기가 많고, 가끔 베스트셀러와 전혀 상관없는, 서점에 가서 책을 뒤적여야만 얻을 수 있는 레어템들도 있다. 어디까지나 처세는 처세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거지같은 인간과도 가식없이 잘 지내게 해주는 그냥 그런 녀석이다. 가식이 없다는 것은 특정 부류와 대화하기 좋은 자기 자신을 fork 했다는 것이라 어떤 의미에서는 가식이 될 수도 있겠다.
자기 자신을 교정하지 않고 처세에만 의존하는 전략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훌륭한 종자와 환경을 가진 인간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런 녀석들과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런 녀석들과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로 진출한 사람이라면 처세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처세에 의존한 전략이 나같은 종자를 가진 사람에게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시점의 나는. 좀 더 쓸만한 처세책을 찾아보게 되었고 처세책에 쓰여진 대로 행동하기가 어려운 것을 체감하며 자연스럽게 자기관리책들을 함께 읽게 되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전략을 바꿀 의지가 없는데 자기관리 책을 아무리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나. 배출구가 없는 불굴의 스트레스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고 이는 자해에 가까운 행동이다.
그래서 조금씩 더 깊숙한 곳을 건드려 보기로 했다. 성공하기 위한.. 따위의 책들을 벗어나서 심리학 책을 읽는다.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한 위험한 시도. 효율이 극에 달하여 자신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를 잊어버린 자들에게 꼭 필요한 시도. 그러다보면 그 내용이 너무나도 어려워 포기하기 쉬운 철학책들도 건드려보고 더 나은 솔루션을 얻기 위해 새로운 키워드 발굴을 위해 열심히 구글링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시다 슈가 쓴 게으름뱅이 정신분석 1, 2권도 상당히 좋아한다. 개개인의 무의식을 접근하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좋아한다.
M. 스캇 펙이 쓴 '아직도 가야 할 길'도 그런 책이다. 정보를 주기보다는 깨달음과 자극과 탄성을 주는 책. 그런 책들을 사랑한다.
일본의 자기관리 책들처럼 잘 정리되고 토막나 있지 않고 스토리 기반의 책이지만 인상 깊었던 구절 몇개를 옮겨본다.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보내는 시간,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부모에게 얼만큼 귀중하게 취급받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사랑이 없는 어떤 부모는 자기들의 사랑이 부족한 것을 감추려고 아이들에게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아이들을 소중히 여긴다고 느끼게끔 하지만 애정이 가득 찬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주지는 않는다. 자녀들은 결코 그런 말들에 속지 않는다. 부모가 사랑한다고 믿기를 원하므로 의식적으로 그 말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부모가 말로만 그러지 진심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부모와 자식관계 뿐만이 아닌, 정을 기반으로 한 모든 관계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우리는 사랑할 때, 우리의 가장 큰 리소스인 시간을 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랑은 suspend 되었거나 away 된거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그녀는 언제나 주어진 시간에서 처음 한두 시간은 즐거운 일을 반쯤 미리 해치우고 나머지 6시간은 지겹고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 한두 시간에 재미없는 일을 억지로라도 먼저 해치우고 나머지 6시간은 자유롭게 즐기는 것이 더 낫지 않겠댜고 말했다. 그녀도 스스로 공감하고 예전의 습관을 바꾸려고 했고 그 결과 더 이상 일을 질질 끌지 않게 되었다. 이는 그녀가 근본적으로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때문에 대부분의 처세술과 자기관리 기술을 읽는 행위는 그 의도를 만족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서른일곱 살이 끝나 가던 무렵, 어느 봄날의 일이다. 일요일에 산책을 하다가 이웃집에서 풀 깎는 기계를 수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이웃과 인사를 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나는 그런 일은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
그런데 이웃 친구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퉁명스럽게 쏘아 붙이는 것이었다.
"시간을 들여 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죠, 뭐."
마치 도사처럼, 단순하고 아무런 주저도 없이 정확하게 말하는 그의 대답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산보를 계속했다.
시간을 들여 해 보려고 하면 대부분이 해결된다. 이것은 프로그래밍을 하며 확실히 알게 된 거다. 그런데 풀 깎는 기계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였다. 나도 그런 일은 하나도 할 줄 모르고, 시간을 들여 해 보려고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
문제는 시간에 있다. 일단 개인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면 그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면서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버리려고 한다. 그녀는 문제를 분석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불안감을 견뎌 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어서, 이 일을 단 몇 분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그녀의 성급한 해결책은 부당하기 일쑤였다.
나 또한 불안감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 불안감을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희생양이 있을 때만 충분한 시간을 투입한다. 이러한 전략이 올바르지 않음을 찔러주는 좋은 내용이다.
그는 매우 영리한데도 이런 자유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커다란 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정치적 세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슬프게 여기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자유를 사랑한다는 것과 자유를 방해하는 압제적인 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실제로는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여 남에게 주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선택을 하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에 삶의 적대시하는 그 친구의 태도가 바뀌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는 투쟁하기보다 회피하는 쪽이다. 요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진 그룹을 많이 접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회피가 투쟁보다 장기적으로도 나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읽고 난 뒤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기분이 들어 책 소개가 많이 미뤄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 포스트를 통해 상처입은 영혼을 구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내어 포스팅 한다. 내 안의 상처들도 사랑과 함께 이 책과 함께 계속 치유될 것이다. M. 스캇 펙에게 무한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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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있는데 시간날 때 읽어봐야겄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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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작성해주신 서평 잘 보았습니다. 더불어 오는 12월 초 『치팅컬쳐-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라는 신간을 출간하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신간은 '연예인의 학력위조' '정치인의 거짓말' '운동선수의 약물남용' 처럼 왜 현 사회가 속임수와 편법이 난무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알아보고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출간 전에 일부 네티즌께 증정도서(샘플도서)를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오는 11월 28일(금)까지 mktg@seodole.co.kr 로 배송정보(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회신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럼 늘 건강하세요.
- 서돌출판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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