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론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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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라하는, 기시다 슈가 쓴 '게으름뱅이 정신분석' 1권을 보다보면 유환론을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

메트릭스 1편에서 모피어스가 한 유명한 'What is real?' 이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증명하기가 참 어려운데, 환상속에서 살고 있는 개인으로서는 이것이 환상일거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머리속에서 그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는 분명 그 환상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유환론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유환론은 인간을, 혹은 나 자신을 이롭게 하는데 별반 도움이 되질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가면서 필요로하는 모든 것들, 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이용가치 있는 사람들, 싸워야할 사람들, 사회 등 모든 이들이 각자의 사적환상속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시다 슈는 잘 구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믿고 있는 공동환상을 하나의 문화라고 말한다. 머 그렇담.. 사람들이 열심히 눈치보며 서로를 모방하고, 이드는 무시한채 묘한 법에 맞추어 연극을 하는 것이 공동환상이라는 건데.. 당연한 얘기가 아니던가. 기존 이론의 새로운 표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환론이 매력적인 이유는 모든 것에 정답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어린이들처럼 고뇌하고 삽질을 거듭했으나 딱히 답이 없어 답답함을 느끼거나, 자기는 정답을 알아냈다며 자만하며 쳐달리는 오만해지는 것을 방지하는데 큰 효과가 있기 때문.

우리들에겐 사적환상과 공동환상이 있는거다. 만약 사적환상의 일부분을 말 또는 글로 표현하여 공동환상으로 만들어버렸다면, 더이상 그것은 사적환상이 아니다. 게다가 말 또는 글, 즉 언어로 형성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유연성조차 떨어졌다. 이제 그 안건은 더이상 혼자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혼자서는 발전시킬 수 없다. 그것을 다시 사적환상의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일부를 잘라내고 덧붙이는 등의 조작을 가해야만 한다. 환상은 동기와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환상이 깨지는 것은 비전이 없어지는 것과 맞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일을 혼자 묵묵히 수행하기로 계획했는데, 그 계획을 남에게 공표하고나니 이상하게 지키기 어려워졌다면, 그 일은 사적환상 속에서 처리해야하는 일인 것이다. 아니면 그 공동환상을 (공표하기 전에는 사적환상이였던)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자들에게만 공표했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묵묵히 수행할 일을 계획하지 않는 듯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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